에도 시대(江戸時代)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패권을 확립하고 에도를 본거지로 한 무가 정권(에도 막부)를 수립합니다. 그리고 막부와 대립하거나 따르지 않는 가신의 영지와 신분을 박탈해 가문을 망하게 하는 엄벌을 내리고 무력을 배경으로 한 권위로 가신을 통제합니다. 도요토미 가문과의 전투(오사카 전투, 大坂の陣)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킨 뒤에도 막부는 일국일성령(一国一城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와 같은 법령 등을 공포하면서 가신 통제를 강화합니다.

하지만 영주의 무력 지배에 고통받던 영민(領民)이 무장봉기해 영주에게 반발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또한 막부에 의해 처분되어 모실 주군을 잃은 무사(낭인)때문에 치안이 악화되었고 막부에 대항하는 사건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 때문에 막부는 기존 무가의 가치관을 바뀌고 무위를 사용하는 대신 예의를 중시하고 상하 질서 유지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듭되는 자연재해와 기근을 극복하여 백성을 보호하는 나라(막부)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팍스 도쿠가와나(도쿠가와의 평화)라고 불리는 태평한 시대가 됩니다.

그러나 그동안 한정된 나라와 교역해 온 막부는 개국을 요구하는 구미 제국의 압력에 크게 동요합니다. 막부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개국을 받아들이는데 이런 자세에 불만을 가진 무사들 사이에서 이국을 격퇴하고 소극적인 막부도 무찌르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조슈(야마구치현)와 사쓰마(도쿠시마현)에서 구미의 군대와 교전하는 사건(시모노세키 사건, 사쓰에이 전쟁)이 발발합니다. 그러나 모든 전투에서 패하자 구미의 군사력을 통감하고 막부 타도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막부 타도파에 궁지에 몰린 요시노부(徳川慶喜)는 내란을 피하기 위해 정권을 조정에 반환합니다(다이세이 봉환, 大政奉還). 하지만 요시노부의 복권을 두려워한 막부 타도파는 정변을 일으켜 조정을 제압하고 신정부 설립을 선포합니다(왕정복고 대호령, 王政復古の大号令).
동시에 요시노부의 영지 반환과 관직 사퇴(사관납직, 辞官納地)를 결정합니다. 예상대로 이에 반발한 구 막부군과 신정부 간의 전투(도바・후시미 전투, 鳥羽・伏見の戦い)가 일어나고 하코다테의 고료카쿠에서 구 막부군이 항복할 때까지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보신 전쟁, 戊辰戦争).